본문 바로가기

§ 오늘 담기/노래, 이야기에 담다

[음악] 김민기 '봉우리'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내 삶의 1980년대 끝 무렵 한참 공부에 바쁠 시간 목표를 위해서가 아니라 흘러가던 시간을 헤아리며 듣던 늦은 새벽녘 라디오에서 그의 노래  '봉우리'  듣게 되었다.

'봉우리~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 그때 난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 곤 생각지 않았어
나한텐 그게 전부였거든...'

노래 한 소절, 소절에 생각의 마디를 얹어 놓고 노트 한 귀퉁이에 그의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몇 일 후 그에 대한 책 한 권을 손에 들었다.



 

 





책 서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도대체 김민기는?
서울 미대 회화과를 졸업한 화가? 「아침이슬」노래 말을 지어낸 시인? ... 아니면 음악가?
딴따란? 글쎄, 가끔 쌀 농사를 지었다는 풍문 대로라면 일개 농부? 글쎄, 이렇다 할 직업이
없으니 놈팽이? 품펜? 아니면 젊은 선동꾼? 글쎄, 술주정뱅이? 이태백? 김시습? 이지함,
안평대군, 김삿갓.......

김민기는 원래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다.
단지 '안' 부를 뿐이다. 노래 부르길 거부하고 있을 뿐이다......
김민기는 훌륭한 시인이다. 그는 시를 쓰지 않는다. 김민기는 훓륭한 음각가다. 단지 그는
음악을 때려 쳤다. 김민기는 훌륭한 화가다. 단지 그는 그림을 일찌기 포기했다.
그럼 도대체 김민기는 누구인가.  -「발문」 중에서 -


책 '김민기'에는 그의 많은 노래(노래글,악보)와 노래극, 여기에 이야기가 덧 대어 있다.
친구, 아침이슬, 가을편지, 작은연못, 아름다운 사람, 그 사이, 늙은 군인의 노래, 백구, 상록수...
이미 귀전을 스쳤던 노래들도 있고, 처음 듣게 되는 노래들도...
무엇보다 노래들이 만들어졌던 당시의 치열했던 시대상이 노래글에 가득 묻어 있었다.
돌이켜 보면 이 책을 들었던 그 시점에도 그 시대의 치열함은 지속되고 있었던 것 같다.
아쉽게도 '봉우리'는 책에 실려 있지 않았다.
몇년의 시간이 흘렀을까. 친구 집에서 가지런히 꼿혀 있던 김민기라 쓰여 있던 테이프하나를
보게 되었고, 몇일 후에 그의 이름으로 발매된 테잎 4개를 모두 샀다.
그리고 한 동안 그의 목소리와 이야기에 반복하며 생각에 잠기고 했던 것 같다.
요즘 mp3
를 통해 간혹 듣게되는 그의 노래 이야기에서 세상과 동 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이야기에 대해 생각에 잠기곤 한다. 


'봉우리는 1986 아시안게임 뒤 대다수 사람들의 관심 밖의 비 메달권 선수들의 모습에 대한 애잔함을 김민기씨 특유의 정서로 담아낸 곡이라지요..'  








봉우리

                        -   김민기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 봤던 작은 봉우리 얘기해 줄까

 

 

봉우리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때 난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곤 생각질 않았어
나한텐 그게 전부였거든

 

혼자였지...
난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 오르고 있었던 거야

 

너무 높이 올라온 것일까.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
얼마 남진 않았는데. 잊어버려
일단 무조건 올라보는 거야
봉우리에 올라서서 손을 흔드는 거야 고함도 치면서
지금 힘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니야
저 위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늘어지게 한숨 잘텐데 뭐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거기 부러진 나무 등걸에 걸터앉아서 나는 봤지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작은 배들이 연기 뿜으며 가고

 

이 봐!

 

고갯마루에 먼저 오르더라도 뒤돌아 서서 고함치거나
손을 흔들어댈 필요는 없어
난 바람에 나부끼는 자네 옷자락을
이 아래에서도 똑똑히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또 그렇다고 괜히 허전해 하면서 주저앉아
땀이나 닦고 그러진 마
땀이야 지나가는 바람이
식혀주겠지 뭐

 

가끔 어쩌다가
혹시라도 아픔 같은 것이 저며올 땐,
그럴 땐 바다를 생각해, 바다
봉우리란 그거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고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속에
좁게 난 길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 지도 몰라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 오늘 담기 > 노래, 이야기에 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승렬 '돌아오지 않아'  (0) 2011.12.26
알리 '뭐 이런게 다 있어'  (0) 2011.12.20
[노래] 서른 즈음에  (0) 2010.07.23
[노래] 독백  (2) 2010.06.09
[노래] 비와 당신  (0) 2010.04.27